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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카드 1만 장으로는 말이 안 나온다. 외국인 애인이면 될지도 모른다.

영어 단어를 수천 개 외웠다. 그런데 내 차례가 오면 여전히 한 문장을 못 만든다.

· 약 6분

영어가 가장 빨리 느는 사람은 대개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 영어로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쑥스러워 먼저 말을 못 걸고,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문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2,582개의 단어, 그런데 단어장은 없다

Unscript를 만들 때 일찌감치 정한 규칙이 하나 있다. 단어장은 만들지 않는다.

앱에는 2,582개의 단어가 있고, 하나하나에 뜻과 발음이 붙어 있다. 그런데 ’오늘의 단어’도, 카드 묶음도, 저장한 단어 목록도 없다. 단어를 찾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 대화 안에서 그 단어를 탭하는 것.

영어 앱이 어떻게 어휘부터 시작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내 생각은 이렇다. 목적이 말하기라면, 단어를 외우는 건 거기까지 가는 가장 비효율적인 길이다. 단어는 중요하다. 그러나 단어를 하나씩 외우는 일과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일 사이에는 아주 먼 거리가 있다.

영어를 한 해 더 해도, 실제로 쓰는 단어는 늘지 않았다

이건 느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8년 언어학자 바티아 라우퍼(Batia Laufer)는 이스라엘 고등학생 두 집단을 비교했다. 영어를 6년 한 집단과 7년 한 집단이다. 측정한 어휘는 세 종류였다 — 보면 아는 단어, 힌트를 주면 쓸 수 있는 단어, 그리고 자유롭게 쓸 때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

한 해를 더 한 집단은 알아보는 단어가 확실히 더 많았다. 힌트를 주면 쓸 수 있는 단어도 조금 더 많았지만 그 차이는 작았다. 자유 작문에서 쓴 어려운 단어의 비율은 전혀 늘지 않았다.

글쓰기는 적어도 멈춰서 생각할 수 있다. 말하기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원인과 결과가 뒤집혔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휘가 많다는 걸 보고, 어휘가 원인이라고 결론 내린 뒤 외운다. 하지만 단어를 알아보는 것과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고, 암기가 훈련하는 건 앞의 것뿐이다.

가장 빠른 학습법은 외국인과 연애하는 것일까

가장 효율적인 학습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진지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언어를 쓰는 애인을 만들어 매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생각은 한 중국어 기사가 제목으로 대놓고 물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외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영어는 무조건 느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아니다. 매일 함께 있는 것과 매일 그 언어로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효과를 내는 건 연애 자체가 아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세 가지다. 매일 입을 열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이 다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못 알아들으면 다시 묻는다. 그리고 오가는 이야기는 늘 같은 몇 가지다 — 뭘 먹을지, 몇 시에 들어올지, 이번 주말에 뭘 할지. 그래서 같은 문장이 수십 번 반복되고, 결국 몸에 붙는다.

대화가 언어 학습에 무엇을 하는지 살펴본 연구의 계보가 있다. 2007년 앨리슨 매키(Alison Mackey)와 구재명(Jaemyung Goo)은 상호작용 연구 28편을 메타분석으로 모았다. 대화 중에 다시 말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교정을 받는 것은 학습자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측정한 효과가 연습 직후의 효과보다 컸다.

뒤집어 말하면 듣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프랑스어 몰입 학교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프랑스어로 지낸다. 듣기와 읽기는 모어 화자에 가까워지는데, 말하기와 쓰기는 대체로 뒤처진다. 연구자들이 6학년 몰입 학급 열 곳에서 하루 전체를 녹음하고 학생들이 수업 중 소리 내어 말한 것을 살펴보니, 한 절보다 길었던 것은 전체의 15%뿐이었다.

영어 때문에 연애를 시작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까이에 외국인 친구가 있어도 누구나 입을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1986년 일레인 호위츠(Elaine Horwitz)와 동료들은 미국 한 대학의 스페인어 초급 수업 학생 75명을 조사했다. “어학 수업에서 준비 없이 말해야 할 때 당황하기 시작한다”에 동의한 사람이 49%였다. 수업에서 말하는 일의 어려움은 도움을 청하러 오는 불안한 어학 학습자들이 가장 자주 꼽는 고민일 것이라고 그들은 적었다.

미국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중국 대학 1학년 547명(영어 전공자는 없었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분의 1 이상이 영어 수업에서 불안을 느꼈다. 대부분은 대화에 참여할 의향이 있었지만, 많은 이가 수업 중에 영어로 말하는 위험은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많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이것이 현실이다. 두 가지가 막는다. 하나는 쑥스러움 — 틀릴까 봐, 어색한 침묵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 다른 하나는 정작 그 순간이 왔을 때 문장을 어떻게 만들지 모른다는 것.

“매일 원어민과 이야기하라”는 그들에게 너무 높은 문턱이다.

화면에서 읽는 데서, 아무것도 안 보는 데까지

그래서 Unscript의 생각은 단순하다. 대화의 주고받음은 남기고,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부분은 걷어낸다.

앱에는 61개의 일상 상황에 걸친 562개의 대화가 있다. 커피 주문하기, 호텔 체크인, 병원 가기, 면접, 그리고 첫 데이트와 연애 중의 대화까지. 대화 하나는 8턴이다. 상대가 한 문장을 말하고 당신이 답한다. 상대의 목소리는 미리 만들어 둔 음성이라 결코 짜증 내지 않는다. 당신이 한 말은 기기 안에서 인식되고, 녹음은 어디로도 올라가지 않는다. 한 문장이 잘 안 됐으면 언제든 돌아가 다시 할 수 있다.

대화는 한 단계씩 올라간다. 초급에서는 자기 대사를 통째로 소리 내어 읽는다. 중급에서는 핵심 단어의 절반이 가려져, 말하면서 떠올린다. 고급에서는 각 단어의 첫 글자만 남는다. Ultra에서는 당신의 대사가 전부 숨는다 — 상대의 말을 듣고 답한다(번역을 켜 두었다면 자기 대사의 뜻은 한국어로 보인다).

언어 교육에서는 이것을 scaffolding fading, 비계를 걷어내기라고 부른다. 먼저 전부 받쳐 주고, 그다음 한 조각씩 치워 스스로 설 수 있게 한다.

기준은 한 문장에 틀린 단어 하나까지다. 막히면 언제든 원래 문장을 봐도 된다. 그리고 봐도 감점은 없다. 이건 연습이지 시험이 아니고, 증명할 것은 말할 수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연습한 대화는 1일, 3일, 7일 뒤에 돌아오고, 간격은 240일까지 늘어난 다음 끝난다.

한계도 있다. Unscript는 자유 대화가 아니다. 대사는 정해져 있다.

그건 의도한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보통 부족한 건 무엇에든 답해 주는 상대가 아니다. 여러 번 말해서 저절로 나오게 된 문장들의 재고다. 여기서 먼저 매끄럽게 만들어 두면, 마침내 영어를 쓰는 사람 앞에 섰을 때 첫 문장을 그 자리에서 조립하지 않아도 된다.

그 2,582개의 단어

존재하지 않는 단어장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금도 Unscript에는 저장한 단어 목록이 없다. 2,582개의 단어는 전부 대화 안에 산다 — latte는 커피 대화에, check-in은 호텔 대화에.

미리 외워 둘 필요는 없다. 당신 차례가 왔을 때 말할 수 있으면 된다.